“111세에도 난 아직 청춘. 늘 웃음을 잃지 말게나”
"나는 오늘 청년 기분이예요.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이제 여왕의 카드도 받았고...모터달린 휠체어만 있으면 돼요."
7일 영국 남부 포츠머스항에 정박한 영국 전함 빅토리호 함상에서는 1차세계대전에 참가한 유럽의 참전 용사 가운데 최고령자인 헨리 앨링험 옹의 111회 생일 축하연이 열렸다고 영국의 텔레그래프지 인터넷판이 전했다.

영국 공군의 축하비행과 해병대의 브라스 밴드에 맞춰 후배 병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입장한 앨링험 옹은 담배연기속에 참전을 비롯 긴 인생을 회고하는 듯 감개무량한 모습이었다.
그가 전쟁에 참가한 것은 영국 해군 비행전대의 일원으로 1916년 유틀랜드 전투에 참여한 것이 처음으로, 이후 1918년에는 영국 공군에 배속됐다.
1차세계대전 후 결혼한 그는 그후 포드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 은퇴할 때 까지 일한 바 있다. 부인을 1970년 여윈 데 이어, 세 딸도 1980년대에 먼저 세상을 뜬 바 있다.
이날의 생일 축하연에는 많은 후손들이 자리를 같이했는데 그는 6명의 손자 손녀와 함께 12명의 증손, 14명의 고손 및 고손의 자녀 1명을 두고 있다.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멀리 미국 미시간주 그랜래피즈에서 날아온 손자 크리스토퍼 그레이(47)씨는 "할아버지가 64세실 때 내가 태어났고 1966년 처음 뵈었을 때 할아버지는 정말 멋지셨으며 지금도 변함없으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무척 가정적이셨다면서 그를 낚시나 캠핑 등 야외 나들이에 모시는 것을 좋아하셨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할아버지가 유머 감각이 뛰어나셨으며 농담을 하는 등 만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셨다고 말했다.
앨링험 옹은 이날 사람들에게 인생 체험이 농축된 충고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지키면서 운동을 하도록 하세요. 또 많은 사람들이 유머 감각을 잃고 삶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하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도록 해보세요"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이 나이에 이르렀지만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어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앨링험 옹은 작년까지만 해도 서섹스 지방의 이스트본에서 혼자 생활해 오다 시력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금년들어 안과 치료가 가능한 브라이튼 부근의 던스턴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2007.6.8.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