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

참고사이트: noahsarksearch.com

노아 홍수와 길가메쉬 홍수 (The Flood of Noah and the Flood of Gilgamesh)       Frank Lorey

배경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19세기 중반 (고대 바빌론의) 니느웨(Nineveh)의 대도서관(Great Library) 유적지(아슈르바니팔의 서고)에서 발견되었을 때부터 기독교인에게 흥미가 있어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노아의 홍수와 매우 비슷한 전 지구적인 홍수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B.C. 2000-3000년 경까지 기록 연대가 올라가는 서사시의 나머지 부분은, 그 시대 이교도들의 전형적인 다신론적 신화들을 다루고 있는 까닭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몇몇 기독교인들은 서사시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개념과 사후세계에 대해서 연구해 왔다. 비록 바빌론, 페니키아, 히브리인들의 이에 대한 설명들 모두가 공유되어진 신화들 이상의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고 세속적 학자들은 말하고 있지만, 이들 설명들 사이에 유사한 점들은 확인되어져 오고 있다.
세계 곳곳에는 고대의 출처를 둔 무수한 홍수 이야기(flood stories)들이 있다. 가장 초기의 문자기록인 설형(쐐기)문자 점토판(cuneiform tablets)들에서 발견되어지는 홍수 이야기들은 뚜렷한 유사점들을 가지고 있다. 쐐기 모양의 문자는 수메르인(Sumerians)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아카드인(Akkadian)들에 의해 전파 되었다. 바빌론어(Babylonian)와 아시리아어(Assyrian)는 아카드어(Akkadian)에서 파생된 언어(dialects))이고, 이들 둘 다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원래의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와 나중의 바빌론과 아시리아인들의 홍수 이야기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유사점의 대부분은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바빌론의 홍수 이야기는 가장 완전한데, 205줄의 홍수에 대한 설명 중에서 단지 7줄만 잃어버렸다. 그것은 또한 최초로 발견된 것이어서, 초기 홍수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어졌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12개의 큰 점토판(tablets)들에 포함되어져 있고, 최초의 발견 이후에 그 서사시는 다른 점토판들에서도 초기의 다른 고대 언어들로 번역되어져서 발견되어지고 있다. 사실상  B.C. 650년 경으로 연대가 평가되어지는 점토판들은 원래의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B.C. 2000년 경으로 연대가 평가된 점토판들에서도 홍수 이야기의 단편들이 발견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B.C. 2000년 이전에 잘 구성되어진 홍수 이야기는 그 연대보다 훨씬 오래 전에 있었던 자료들로부터 편찬되어진 것으로 언어학자들은 믿고 있다.] 수메르의 상형문자 기록들은 B.C. 3300년경 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는 시(poem)의 형태로 구성 되어있다. 주인공은 길가메쉬(Gilgamesh)이고, 그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에 의하면, 길가메쉬는 우르크(Uruk)의 최초 왕조에서 126년 동안 통치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 오랜 통치 기간은 성경에 나오는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나이와 비교할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길가메쉬 이후의 왕들은 오늘날의 수명과 비슷한 생애를 살았다. 왕들의 목록은 또한 온 땅을 뒤덮어 파멸시켜 버린 특별한 대홍수를 기록해 놓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
그 이야기는 영웅 길가메쉬의 업적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위대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서, 홍수 이전 시대의 자료들을 보존했던 사람이었다. 길가메쉬는 우르크의 도시 성벽을 건축했던 일과 우르크의 엔나(Eanna) 사원을 세운 일을 포함하여, 그가 이루어놓았던 모든 일들을 점토판 위에 기록하여 놓았다. 그러나 그는 억압적인 군주였다. 이것은 그의 백성들이 ‘신(gods)들’에게 길가메쉬에 대해 싸울 강적(nemesis)을 만들어 달라고 울부짖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14]
한 번의 싸움이 끝나고, 이 강적인 엔키두(Enkidu))는 길가메쉬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버린다. 이 둘은 많은 위험한 모험들을 겪게 되면서 명성을 얻게 되고, 엔키두는 결국 그 모험으로 인해 죽게 된다. 그 후 길가메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불사(immortality)의 영원을 찾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시도 끝에 그는 성경의 노아를 매우 닮은 우트나피쉬팀(Utnapshtim)을 만나게 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우트나피쉬팀은 인류를 파멸시켜버린 거대한 홍수(Great Deluge)를 이겨낼 배(ship)를 만든 후에 불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친척들과 모든 종류의 생물들을 배에 태웠다. 우트나피쉬팀은 땅을 발견하기 위해 새들을 내어 보냈고, 배는 홍수 후에 산 위에 정박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하세계로 엔키두를 방문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비록 많은 유사성이 두 이야기 사이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아래의 표는 창세기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기록된 홍수 이야기를 여러 측면에서 비교하였다.

창세기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기록된 홍수 이야기의 비교

내용

창세기

길가메쉬

홍수의 크기
홍수의 원인
누구를 멸망시키려고
일으키신 분
영웅의 이름
영웅의 성격
알려준 방법
배를 지으라 명령했는가?
영웅은 불평했는가?
배의 높이
내부의 구획
문들
창문들
바깥쪽 코팅
배의 모양
승선자
다른 승선자
홍수의 수단
홍수의 기간
땅을 발견하는 시험
새의 종류
방주가 도착한 장소
홍수 후 희생제물?
홍수 후 축복?

전 지구적
사람들의 사악함
모든 인류
여호와 (Yahweh)
노아 (Noah)
의로움
하나님의 지시
명령함

여러 층(3층)
많음
하나
적어도 하나
역청
장방형
노아의 가족만
모든 종류의 동물들
지하수 폭발과 엄청난 강우
일 년여 (40 주야 강우 포함)
새를 날려 보냄
까마귀와 세 마리 비둘기
아라랏(Ararat)산
드려짐, 노아에 의해
축복하심

전 지구적
사람들의 죄
한 도시와 모든 인류
신들의 모임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
의로움
꿈에
명령함

여러 층(6층)
많음
하나
적어도 하나
역청
입방형
가족과 소수의 다른 사람들
모든 종류의 동물들
엄청난 강우
단기간 (6일 밤낮)
새를 날려 보냄
비둘기, 제비, 까마귀
니쉬르(Nisir)산
드려짐. 우트나피쉬팀에 의해
축복하심

이 두 이야기를 표로 비교하는 데에 몇몇 해석들이 있을 수 있다. 일부 유사점들은 매우 놀랍다. 반면에 다른 것들은 매우 일반적이다. 배를 만들기 위해 우트나피쉬팀이 받은 명령은 주목할 만하다. '오, 슈루파크(shuruppak)의 사람이여, 우바투투(Ubar-Tutu)의 아들이여, 그대의 집을 뜯어내라. 배를 지으라. 부를 포기하고, 내세의 삶을 구하라. 소유들을 경멸하라. 너의 생명을 구원하라. 살아 있는 모든 종류(kinds)의 씨들을 지은 배로 데려 오라. 배의 규모를 잘 측량하여 지으라.'[17] 사람의 죄들을 심판하기 위한 홍수의 원인 역시 인상적이다. 7번째 점토판 180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죄인에게 그의 죄를 물으라. 거역한 자들에게 그의 거역을 물으라'[18]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창세기 6-9장과 길가메쉬 서사시의 유사점에 대한 연구는 이들의 유사성이 우연히 일치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영웅들 이름의 의미는 공통적인 뿌리나 연결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노아(Noah)는 ‘안위(rest)’를 의미한다. 반면에 우트나피쉬팀은 ‘삶을 발견한 자(finder of life)’를 의미한다.[19] 둘 다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였을 때, 의롭고 비교적 흠이 없던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트나피쉬팀은 방주에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항해자와 소수의 기능인들을 태우고 있었다. 또한 두 이야기 모두 배가 중동의 어떤 지역에 도착했다고 기록한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아라랏산(Mt. Ararat)과 니시르산(Mt. Nisir)은 480km(300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홍수 후에 영웅들이 받은 축복도 꽤 다르다. 우트나피쉬팀은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고, 노아는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었고, 동물들을 지배했다.

결론
이 두 홍수 이야기에 대한 비교 연구가 이루어진 초기부터, 이들 이야기 사이에 명백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동의되어지고 있다. 인류 전 종족들에 널리 퍼져있는 홍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합법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거대한 홍수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완벽한 증거이다. 길가메쉬의 가장 오래된 단편들의 기록 연대는 창세기의 기록 연대보다 더 오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성경의 홍수 이야기는 구전으로, 또는 노아로부터 족장들에 의해서(결국 모세까지) 물려 내려오게 된 기록들로서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원본에 대한 재언급(약간 변경되어)이었던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제안한 대중적인 한 이론은, 히브리인들의 홍수 이야기는 바빌론의 이야기를 빌려왔다고 말한다.[22] 그러나 어떠한 결정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 윤리적 측면에서, 그리고 많은 세부적 사실들에서의  차이는, 성경의 홍수 이야기가 수메르인들의 전설을 빌려와서 쓰여졌다고 볼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이고 비종교적인 학자들을  여전히 그러한 이론을 선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에서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은, 모든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들에 앞서는 하나의 공통의 출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23]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창세기 이야기는 정확한 내용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기록과 전승을 대대로 후손에게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4] 창세기는 대부분이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하는 식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반면에 길가메쉬 서사시는 신화적인 일들을 서술하는 식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이것은 심지어 많은 자유주의적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One-source Theory)은 노아의 홍수와 방주 사건이 실제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25]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쓰여졌음과 오류가 없음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전승 속에 홍수 사건에 대한 진실된 설명을 보존해두고 계셨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창세기 이야기가 모세(Moses)에 의해서 모아지고, 편집되고, 쓰여질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수백 년 이상을 순전하고 정확하게 보존되어져 왔던 것이다.[26] 그리고 길가메쉬 서사시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미화되어지고 손상되어진 홍수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 곳곳의 홍수 전설들 (Flood legends from around the world)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홍수 전설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원주민들의 역사나 전설에 전 지구적인 홍수 이야기가 기록되어져 있다. 오래 전의 선교사들은 오지의 종족들이 성경의 홍수 이야기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전설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놀라움을 보고했었다. 벨라미(H.S. Bellamy)는 '달과 신화 그리고 사람(Moons, Myths and Men)'이라는 책에서, 전 세계적으로 500 여개의 홍수전설들이 있다고 추정했다. 중국, 바빌로니아, 웨일스, 러시아, 인도, 미국, 하와이, 스칸디나비아, 수마트라, 페루, 폴리네시아 등과 같은 고대 문명들은 모두 대홍수에 관한 그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홍수 이야기들에는 종종 다가올 홍수에 대한 경고, 사전에 배를 만드는 것, 동물들을 싣는 일, 가족들을 모음, 물이 감퇴된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새를 보내는 것 등과 같이 성경적 내용과 일치하는 공통된 요소들이 있다. 대홍수에 관한 일관된 견해가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들에서부터 압도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같은 기원(
the Bible's record)에서 나왔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두로 전해졌을 세부 내용들은 조금씩 바뀌어졌다.
아마도 전 지구적 홍수에 관한 두 번째로 중요한 역사적 증거는 길가메쉬 서사시(
Epic of Gilgamesh)에 나오는 바빌로니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다. 성경의 내용과 바빌로니아의 내용이 비교되었을 때 많은 현저한 유사성들이 발견되었고, 그것은 이들 이야기가 같은 사건에 기원을 두었거나, 같이 구두로 전승되어져 온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프리카
서 탄자니아 (Southwest Tanzania). 옛날에 강에서 홍수가 시작되었다. 신이 두 사람에게 배에 오르라고 하셨다. 그분께서는 많은 씨앗들과 많은 동물들을 실으라고 하셨다. 홍수의 물은 마침내 산을 덮었고, 결국 홍수가 그쳤다. 그리고 한 남자가 물이 다 말랐는지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비둘기는 돌아왔다. 다음번엔 매를 보냈는데, 매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남자는 동물들과 씨를 가지고 배에서 나왔다.


아시아

중국 (China). '히킹(Hihking)'이라 불리는 중국 고전은 대홍수로부터 살아난 '후히 가족(The family of Fuhi)'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고대 이야기는 산과 모든 것을 포함한 전 대륙이 홍수에 잠겼으나, 배를 탄 한 가족만이 생존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 사람을 그들 문명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이 기록은 후히, 그의 아내, 세 명의 아들, 그리고 세 명의 딸들이 대홍수로부터 살아난 유일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후히와 그의 가족은 지구상에서 살아난 유일한 가족이고, 세상에 다시 퍼졌다고 이야기한다.

바빌론 (Babylon). 길가메쉬(Gilgamesh)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이라는 노인을 만났다. 그는 길가메쉬에게 다음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신은 우트나피쉬팀에게 와서 다가올 끔찍한 홍수에 대해 경고했다. 그들은 우트나피쉬팀에게 집을 부수고 커다란 배를 지을 것을 지시했다. 배는 120 규빗의 높이와 넓이와 길이로 구성되었다. 우트나피쉬팀은 역청으로 배를 발랐다. 그는 모든 종류의 동물 암수, 그의 아내, 그의 가족, 그리고 식량을 배에 실었다. 배가 완성되었을 때, 비가 갑작스럽게 오기 시작했고, 비는 6 일 밤낮을 왔다. 마침내 모든 것이 고요해졌으며, 배는 나시르(Nisir) 산에 정착했다. 배가 7 일을 쉰 다음 우트나피쉬팀은 비둘기(dove)를 내보냈다. 땅이 마르지 않아서 비둘기가 돌아왔고, 다음번에 제비(swallow)를 보냈을 때 또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까마귀(raven)를 보냈을 때 땅이 말라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우트나피쉬팀은 배를 떠났다.

칼데아 (Chaldean). 시수트루스(Xisuthrus)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다. 크로노스(Chronos) 신은 시수트루스에게, 다가올 홍수에 대해 경고하고 배를 준비할 것을 이야기했다. 배는 2 스타디아(stadia)에서 5 스타디아까지 되어야 했다. 시수트루스는 이 배에 그의 가족, 친구들, 그리고 각 동물의 암수 두 마리씩을 태웠다. 홍수가 왔다. 물이 물러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몇몇 새들을 풀었다. 새들이 돌아왔고, 그는 새들의 발에 진흙이 묻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다시 시도했지만 똑 같은 결과를 얻었다. 세 번째로 시도했을 때,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물이 다 말랐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배로부터 나가게 했고,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드렸다.

인도 (India). 옛날에 마누(Manu)라는 이름의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마누는 몸을 씻는 동안, 큰 물고기의 턱에서 작은 물고기를 구해줬다. 물고기가 마누에게 '내가 다 자랄 때까지 나를 돌보아주면, 내가 끔찍한 것이 올 때 구해 줄께요' 라고 말했다. 마누는 어떤 종류의 끔찍한 것이냐고 물었다. 물고기는 마누에게 대홍수가 올 것이고, 그것이 지구상의 모든 것을 파멸시킬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물고기는 마누에게 보호를 위한 점토 항아리에 자신을 넣어 달라고 했다. 물고기는 자랐고 항아리에서 나왔다. 마침내 그 물고기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 중의 하나인 가샤(ghasha)가 되었다. 물고기는 마누에게 대홍수가 곧 일어날 것이므로 큰 배를 지으라고 말했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마누는 큰 끈으로 배를 가샤에게 묵었다. 물고기는 물이 증가하자, 그 배를 안내했다. 전 지구가 물로 덮였다. 물이 감퇴하기 시작하자, 가샤는 배를 산꼭대기로 인도했다.

호주

Dreamtime flood 라고 불리는 홍수 전설이 있다. 이 홍수를 견뎌낸 것은 워람바(woramba), 또는 방주 구마나(Ark Gumana) 였다. 이 방주에는 노아(Noah), 호주원주민(Aborigines), 그리고 여러 동물들이 있었다. 이 방주는 마침내 드질린바두(Djilinbadu)의 평야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아직도 발견되어질 수 있다고 한다. 중동지방에 방주가 도착했다는 백인들의 이야기는 원주민들을 비굴하게 만들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이 전설은  확실히 선교사들이 전해준 이야기가 호주 원주민의 전설이 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호주 원주민으로부터의 홍수 이야기로는 보여지지 않는다. 

유럽

그리스 (Greece). 옛날에 아마 황금시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들은 자만하기 시작했다. 점점 악해지자 제우스(Zeus)가 화가 났다. 마침내 제우스는 모든 인간을 멸하려 결심했다. 그렇게 하기 전에 인간의 창조자인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그의 인간 아들 듀칼리온(Deucalion)과 그의 아내 피라(Pyrrha)에게 경고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후에 거대한 나무 상자(wooden chest)에 이 커플을 실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고, 전 세계가 홍수에 잠길 때까지 9 일 밤낮 동안 계속되었다. 파르나소스(Parnassus) 산과 올림푸스(Olympus) 산의 꼭대기 만이 물에 잠기지 않았다. 올림푸스 산은 신들의 고향이었다. 나무 상자는 파르나소스 산에 정박했고, 듀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는 밖으로 나왔고, 모든 세계가 물에 잠긴 것을 보았다. 홍수 물이 감퇴될 때까지, 그들은  상자에 있는 식량으로 살았다. 제우스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지구에 재분포 하였다.

북아메리카

멕시코 (Mexico). 톨텍(Toltec) 원주민들은 최초의 창조가 1716년 동안 지속되다가, 한번의 홍수로 멸망했으며, 유일하게 한 가족만이 살아남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아즈텍 (Aztec). 타이피(Tapi)라는 한 남자가 오래 전에 살았다. 타이피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 창조주는 타이피에게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배를 지으라고 말했다. 창조주는 그에게 부인과, 각 동물의 한 쌍씩을 배 안으로 태울 것을 말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홍수가 시작되었다. 사람들과 동물들은 산 위로 올라가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산들도 마찬가지로 홍수로 잠겨버렸다. 마침내 비가 멈췄다. 타이피는 비둘기를 내어 보냈을 때 돌아오지 않자, 물이 말랐음을 알았다.         

미국 (United States). 오지브웨(Ojibwe) 원주민들은 대략 AD1400년 이래로 미국 미네소타에 살아왔던 종족으로, 성경의 내용과 매우 비슷한 창조와 홍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협력하는 삶들이 지속되지 않는 시기가 도래했다. 남자와 여자들은 서로 존경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다퉜고, 곧 마을은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며 분쟁이 일어났다. 이것은 창조주인 기치 마니도(Gitchie Manido)를 매우 슬프게 했다. 그러나 그는 기다렸다. 마침내,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자, 창조주는 물을 사용하여 땅을 정화시키기로 결정했다. 물이 일어났고, 세상은 홍수로 덮여서, 모든 창조물들을 쓸어버렸다. 그러나 소수의 생물체들이 살아 남았다.” 

그리고 어떻게 웨이나부주(Waynaboozhoo)가 물 속에서 여러 동물들과 함께 통나무(log) 위에서 떠다니며 살아남았는지를 말하고 있다.  (Ojibwe - Ancient native American creation story tells of world wide flood.)


델라웨어 인디안(Delaware Indians). 태고의 시대에 세계는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악한 영이 들어왔고, 거대한 홍수의 원인이 되었다. 땅은 물에 잠겼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거북이(turtle)의 등에서 피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북이의 등껍질은 이끼가 끼게 되었다. 한 마리 아비새(loon)가 머리 위로 날아왔다. 그리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땅으로 올라가라고 간청했다. 바다는 깊이를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새는 멀리로 날아갔다가, 주둥이에 땅에서 나는 작은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마른 땅이 있는 장소로 거북이를 안내했다.  (Delaware Indian Legends

남아메리카

잉카 (Inca). 파카카마(Pachachama)라고 불리던 시기에 사람들은 매우 악하게 되었다. 그들은 너무 바빴고, 악한 행동을 하느라, 신들에 대해 소홀했다. 단지 높은 안데스에 사는 사람들만 부패하지 않았다. 높은 땅에서 살던 두 형제는 그들의 라마(llamas)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그 이유를 라마에게 물었다. 그리고 별들이 라마에게 말해주었던 것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거대한 홍수가 온다는 것이었다. 이 홍수는 온 땅의 모든 생명들을 파괴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형제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높은 산의 동굴로 들어갔다. 비가 오기 시작했고, 네 달 동안 계속되었다. 물들은 점점 올라가 꼭대기만 남기고 온 땅을 덮어버렸다. 결국 비는 멈췄고, 물들은 물러가기 시작했다. 산들은 원래의 높이로 돌아갔고, 목동들은 땅에 재번성하였다. 라마는 홍수를 기억했고, 그것이 라마들이 고산지대에서 살아가기를 좋아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묘족(苗族)에게 전승되어온 창조(創造) 이야기
(머릿말)
묘족(苗族) 또는 Miao(苗)는 영어권의 사전에는 Miautso 라는 철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예전부터 중국대륙의 양자강 이남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보다 군사력과 조직력이 강한 한민족(漢民族)에 의하여 남서쪽의 산악지대로 쫓겨가고 말았다.

묘족인(苗族人)들은 자기들이 광서성(廣西省)에서 쫓겨왔노라고 말하고 있다. 묘족의 전승들은 다른 원시적인 민족과 비교하여 볼 때 매우 정확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것은 음율의 형태를 가질 뿐 아니라, 두 줄의 연속귀절(二行連句)기법을 이용하여 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 기법이란 다른 단어이면서 의미가 같든가, 아니면 비슷한 것으로서 표현되기 때문에 두 번째의 절(節)이 첫 번째 절의 의미를 부여하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첫 번째 절은 그 의미가 불명하게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방식은 히브리어 시(詩)의 한 가지 형태와 매우 닮은 것인데, 예컨데, 시편 21편 1, 2절에서 볼 수가 있다.


(창조)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하신 날

그 하나님이 빛의 문을 여셨도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구상에 흙과 돌로 산을 만드셨도다.

하늘에 하나님은 천체(天體)와 해와 달을 만드셨도다.

땅에는 하나님이 게와 소리개를 창조하셨도다.

물속에 가재와 물고기를 창조하셨도다.

들판에 하나님은 호랑이와 곰을 만드셨도다.

산들을 뒤덮어 줄 초목을 만드셨도다.

산과 산의 끝까지 나무를 가득 채우셨도다.

연두빛의 등나무를 만드셨도다.

대나무 숲을 만드셨도다.

(사람)
지상에 하나님은 티끌로 사람을 만드셨도다.

창조된 남자에게서 하나님은 여자를 만드셨도다.

그 후에 흙의 첫조상 다아트는 돌저울을 만들었도다.

지구의 눈금을 그 기초까지 측정하였도다(註1).

천체의 크기를 계산하였도다.

그리고서 하나님의 도(道)를 깊히 생각하였도다.

흙의 첫조상 다아트는 첫조상 셋을 낳았도다.

첫조상 셋은 아들 루스를 낳았도다.

루스는 게이로를 얻었고, 게이로는 라마를 낳았도다.

첫조상 라마는 남자 누아를 낳았도다.

누아의 처는 여족장(女族長) 가우·보루엔이었도다.

그들의 아들은 로·한, 로·시엔 그리고 야아후였도다(註2).

그리하여 땅은 민족과 가족으로 채워져 갔도다.

피조물은 민족과 국민들에 의하여 공유(共有)되었도다.

(사악한 세계)
이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안했으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되돌아가지 아니하였도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항하며, 서로 다투었도다.

지도자들은 전능하신 주님을 향하여 반항하였도다.

그러자, 지구는 제삼층(第三層)의 깊은 곳까지 뒤흔들렸도다.

공기를 하늘끝까지 찢으셨도다.

하나님의 진노가 타올라 그 자신을 채우셨도다.

하나님이 오셔서 인류를 파멸시키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오셔서 사람으로 가득찬 온 땅을 멸망시키셨도다.

(대홍수)
그래서 흙모래 섞인 비가 40일간 쏟아져 내렸도다.

그 후로 안개와 이슬비가 55일간 계속 내렸도다.

물은 산들과 산맥을 넘쳐흘렀도다.

산채같은 홍수(洪水)가 계곡과 웅덩이에 뛰어들어갔도다.

지구에는 피할 곳이 아무데도 없었도다.

세계에는 살아 갈만한 발붙일 데도 없었도다.

사람마다 좌절하고 무기력하게 되고 멸망케 되었도다.

절망하고 공포에 떨며 감소되고 종말을 고하였도다.

그러나, 족장(族長) 누아는 올바른 사람이었도다.

여족장 가우·보루엔은 고결한 사람이었도다.

매우 폭이 넓은 방주(方舟)를 만들었도다.

매우 커다란 방주를 만들었도다.

가족 모두가 방주에 오르자 방주는 떠올랐도다.

가족 모두가 무사히 대홍수를 피하였도다.

그와 함께 승선한 동물들은 암컷과 수컷이었도다.

날짐승들도 같이 들어갔는데 그것들은 쌍쌍(雙雙)이었도다.

때가 이르자 하나님은 물에게 명하셨도다.

그 날이 이르자 홍수의 물은 저 멀리로 물러갔도다.

그래서 누아는 피신처에서 한 마리 비둘기를

돌아와 소식을 전해준 까마귀를 다시 날려 보냈도다.

큰 홍수물은 호수로 물러가서 바다를 만들었도다.

진흙은 웅덩이와 움푹 패인 곳을 메웠도다.

다시 한번 사람 살만한 땅이 나타났도다.

이어서, 땅에 주거를 만들만한 장소가 나타났도다.

그때에 물소가 이끌려나와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졌도다.

살찐 소가 창조자(創造者)에게 제물이 되었도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셨도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크신 은총을 베푸셨도다.

(바벨탑)
그 후로 로·한은 쿠사와 메사이를 낳았고

로·산은 에란과 누가슈율을 낳았으며

그들의 자손은 민족과 여러 백성이 되었도다.

그들의 자손은 진영(陣營)을 넓혀 도시를 건설하였도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같은 운률(韻律)이며 같은 음악이었도다.

그들은 모두가 같은 말과 언어로 말하였도다.

그런데, 어랍쇼, 거대한 도시를 만들자고 하였다.

자, 하늘까지 닿는 매우 높은 탑을 쌓자고,

이는 잘못된 일이었으나 그들은 강행하였도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사 언어와 액센트를 바꾸셨도다.

분노가 임하사 하나님은 말과 소리의 장단을 혼란케 하셨도다.

누가 말을 하드래도 옆사람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도다.

말(單語)을 가지고 얘기하여도 사람들은 그 사람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도다.
그래서, 그들이 건설하고 있었던 도시는 마무리되지 못하였도다.

그들이 힘들여서 만들고 있었던 탑은 이처럼 미완성인 채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도다.

그러자 그들은 절망하였고, 온 세계에 흩어져 나갔으며, 그들은 서로가 이리저리 헤어져서 지구를 빙돌게 되었노라.

그들은 여섯 지역에 이르렀고, 여섯 나라 말을 하게 되었노라(註4).

(묘족의 계보)
족장(族長) 야후우는 여러 국가의 중심지에 살았노라(註5).

그의 아들은 족장 고오멘이라 불리웠노라.

그가 처로 삼은 여인은 여족장 고오용이라고 불리웠노라.

손자와 손자의 처는 두 사람 모두 이름을 튜우탄이라 하였노라.

후손들은 차례대로 다음과 같았노라.

족장 가운단·메우 = 완.

여족장 카운단·메우 = 쥬우.

족장 간겐·네왕(처는 없었다)

족장 세아게엑과 여족장 마우·구에

자녀들은 모두 11인으로서 각 가족의 우두머리였도다.

이중 5인의 분가(分家)는 묘족(苗族)이 되었으며

6인의 분가는 한민족(漢民族)으로 동화(同和)되었도다.

이 이야기는 한민족과 묘족의 분리에 대하여, 그 여로(族路)와 악마숭배, 및 각 부족으로 분파된 내용에 대하여 계속하여 기술하고 있다.

묘족은 장례(葬禮)나 결혼식(結婚式)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선조(先祖)와, 사실은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요한 사람들의 이름을 소리내어 낭독한다. 끊이지 않고서 이렇게 하여온 것이 이러한 전승들이 정확하게 된 이유인지도 모른다.

註1. 지구의 깊숙한 곳에는 소인(小人)의 나라가 있으리라고 묘족은 말한다.
註2. 성경에 기술된 셋, 라멕, 노아, 함, 셈, 야벳 이라는 이름과 어느 정도로 닮은 이름이 있다는데 관심을 기울이시기 바란다.
註3. 다음과 같은 유사성에 주의를 기울여주시기 바란다.

성경 : 구시, 미스라임
함의 자손

묘족 : 구슈, 메세이
성경 : 엘람, 앗수르
셈의 자손

묘족 : 엘람, 누가수르

註4. 직역하면 “그들은 헤어져 나아가 거주하였고, 구슬같은 지구를 일주(一周)한다.”가 된다. 묘족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이 구절은 묘족 최초 사람의 지식이 완벽하였다는 것올 보고 주고 있는 듯하다. 즉, 진화가 아니라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註5. 이러한 사실에서 그들은 선조를 더듬어 보면 야곱과 고멜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다. 야곱과 고멜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은 묘족이 인도·유럽 어족(語族)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묘족은 원래 우상숭배를 하지 아니했으나, 한민족에게 정복되면서 한민족으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암송되어 내려오는 이러한 시구(詩句)들은, 이들 묘족을 위해서 더욱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뜻으로 번역(譯者註 : 英譯本)한 것을 얻게 된 것이다. 그들은 확실히 예전부터 참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그리고 예수로 시인하게 되도록 기도하여 주시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로서 이 세상에 보내어 주셨던 분이신 것이다.

* 일본어 편집자 후기(日本語 編輯者 後記) : 이 창조와 대홍수에 관한 놀라울만한 기술은, 중국남서부의 산간지역에 살고 있는 묘족의 선조로부터 대대로 세대에서 세대로 간신히 이어져 내려온 것 같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선교사들과 만나기 전에 이 구전(口傳)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어네스트·트라욱스(Ernest Traux)라는 선교사가 영역한 것을 번역한 것이다. 그는 생애의 거의 전부를 묘족 중에 살면서 주님을 위하여 봉사해온 분이다. 「Acts & Facts」지(誌)가 발행되기 수년 이전에 그는 이 전설문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최근, 제임스·하니이맨씨 라는 분이 그 복사물을 입수하여 내게 보내주었으며, E. Traux 선교사의 미망인인 엘렌·트라욱스(Elen Traux)씨의 주소를 찾아 연락을 취하게 되었다.

트라욱스 부인은 현재 이 번역물의 판권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그것을「Impact」지(譯者註 : 일본 '聖書と科學の會'誌의 자매지로서 宇左神正海 박사가 설립한 단체임)의 기사로 게재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었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 계신 크리스챤이라도 이 놀라운 기록에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트라욱스 부인이 바라고 있듯이 묘족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창조와 홍수에 관한 많은 신화(神話)가 보존되어 왔지만, 바벨탑이나 홍수 이후의 인류분산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상황이다. 이번 입수하게 된 이 글은, 이러한 모든 전승들 중에서 내용상 틀림이 없으며 무엇보다도 성경에 유사한 것들 중의 하나이며, 또한 창세기 기술(記述) 내용의 진실성을 증명해 주는 중요하고도 독보적인 자료이다. 예컨대, 지금까지 묘족의 전승에 대한 신뢰성과 번역의 정확성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 전승이 진실성이 있음이 분명하며, 오늘날 충분히 신뢰할 만한 것이다. 성경의 기록과 차이점이 있다는 이유로 묘족의 전승의 근원이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예컨대 그 당시 그곳에 거주한 기독교 선교사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선교사들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전승(傳承)이 성경과 유사한 점이 분명한 것은 같은 출처, 즉 그 일어났던 사건자체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찌하든 간에 이 전승을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어 가지게 된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어느 분이든지 묘족의 전설이나 일반 역사에 대하여 어떠한 내용이든지 이곳에 기록된 내용이상의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거든 꼭 연락하여 주기 바란다. 끝

※ 譯者註 : 본 글은 일본의 「聖書と科學の會」誌에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입수하여 번역한 것이다. 일본어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일본창조과학회(日本創造科學會) 회장이신 宇左神正海(우사미 마사미) 박사의 허락을 받고서 번역한 것으로 이 지면을 통하여 감사의 뜻을 표한다.

세계의 홍수 전설

문 :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대홍수의 전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답 : 신화(神話)란 태고에 일어난 대사건이나 초월적 존재의 행위 및 운명에 관한 서사시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화는 먼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꾸준히 전승되어 왔다. 신화들은 우주나 인간의 창조(創造), 낙원(樂園), 원죄(原罪), 죽음의 기원(起源), 그리고 대홍수(大洪水)를 다루는데, 지구의 어느 한 지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퍼져있다. 수많은 신화는 경전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각종 사료(史料)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이루어진 고고학적인 발견은 서사시나 종교적 경전속에 묘사된 내용이 실제로 있었던 사실임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 이것은 조금도 불가사의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전과 신화는 민족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내용을 담을 때, 실제 있었던 사건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로 그리스의 소경 시인 호머(Homer)가 쓴 호메로스에 등장하는 트로이 성(城)을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은 한갓 '전설 속의 도시' 로만 알고 있었으나, 1870년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이만에 의해 트로이 성이 발굴되어 '전설 속의 도시' 가 '실제 있었던 도시임!' 을 증명하였다.
그렇다면 성경 창세기에 나와있는 노아의 홍수는 과연 어떠할까? 즉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세기 7장 11절~12절) 는 내용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인류 역사상의 사실이었을까?

그런데 이와 유사한 내용이 수메르의 점토판에 쓰여져 있다.
'아침에 비가 내리고 또 내렸다. 나는 밤에도 장대비가 내리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나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그 두려움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첫째 날에는 남풍이 무서운 속도로 불었다. 사람들은 전쟁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고 앞을 다투어 산 속으로 달아났다. 다른 사람을 구할 엄두도 못낸 채 정신없이 달아났다'

이것은 인류를 전멸시키기 위하여 신이 불러일으킨 홍수이야기다.
거의 모든 생명을 앗아갔다고 하는 대홍수의 전설은 단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지방뿐 아니라, 이집트의 경전,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고서, 태평양 여러 민족의 민담, 우리나라 태고의 기록에서도, 남북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의 토착민들의 전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에 산재되어 있는 대홍수의 전설

이처럼 대홍수에 관한 이야기는 세계각지에 널리 산재해 있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레이저(1854~1941)는 북중남 아메리카의 130개 인디오족 중 대홍수를 주제로 한 신화를 가지고 있지 않는 종족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고대 멕시코의 문서 가운데 하나인 '티마르포포카 그림문서' 에서는 대홍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하늘이 땅에 다가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산도 물 속으로 숨었다. 바위가 땅위에 모든 것을 뒤덮고 테트존트리(구멍이 많이 난 용암으로 멕시코에서 많이 쓰이는 건축자재의 일종)가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끓어오르고, 붉은 산이 춤추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오늘날 과테말라에 살고 있는 인디오인 키체족이 가지고 있는 '포플 부흐'라는 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대홍수가 일어났다.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검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어떤 사람들은 지붕으로 기어올랐지만 집이 무너져 땅으로 떨어졌다. 또 그들은 나무에 매달렸지만 나무는 그들을 흔들어 떨어뜨린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동굴 속에 피난처를 찾았다. 그러나 동굴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버렸다. 이리하여 인류는 멸망했다'

대홍수 전설은 아마존강의 인디오에게도 대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의하면
'어느 날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무서운 소리가 났다. 만물이 암흑 속에 잠긴 뒤에 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만물을 휩쓸어 버렸고, 온 세계가 물에 잠겨 버렸다'
고 한다.

또한 브라질 한 전설에는
'
물이 점점 차 올라 모든 것이 물 속에 잠겼다. 암흑과 큰 비는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디로 달아나야 좋을지 모른 채 우왕좌왕 달아났다. 가장 큰나무를 보고 이것을 타고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 위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고 한다.

이번엔 북아메리카로 올라가 보면 알래스카의 트린키트족의 전설은 홍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살아남은 몇 사람이 카누를 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 소용돌이치는 물 속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곰과 늑대가 격류를 헤치고 사람이 탄 카누로 헤엄쳐 왔지만 무정한 인간들이 창과 노로 쫓아버렸다' 고 한다.

남아메리카의 전설에도 북아메리카의 전설에 나오는 광경과 똑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즉 전설은 주로 대홍수에 관한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목숨을 건진다.

이상이 여러 민족들에 전승된 수많은 홍수 전설의 개괄적인 사항이다.

대홍수 전설의 특이한 공통점

① 신의 경고
이러한 홍수전설에서 주목할 점은, 사건의 보편성 외에도 지역과 지역간에 수천 수만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어떤 점에서는 기막힐 정도로 일치한다.
예를 들면 거의 모든 경우 홍수에 대해서 재앙을 일으키는 신이 나타나 선택받은 일정한 사람들에게 대홍수에 대하여 경고한다. 노아의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바빌론의 서사시에는 물의 신 에어가크시토로스 국왕에 대해 다가올 홍수에 대해서 경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우발의 아들 토우토여, 너희 집을 부수어 배를 만들라. 재산을 돌보지 말고 만일 생명을 구한다면 그것만을 기뻐하라. 배에 온갖 동물을 싣는 것을 잊지마라'

아즈텍의 고서에서도 신이 이것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용설란(멕시코 원산의 관상식물)으로 술을 담지 말라. 그리고 커다란 배를 만들고 트소스톤트리(3월달을 의미)가 되어 물이 하늘까지 차 오르면 그 통나무배를 타라'

성서를 통해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처럼 바벨론의 신 에어, 아즈텍의 신, 노아의 하나님처럼 인도의 신 비쉬누도 다가올 홍수에 대해 경고한다.

② 생명을 건진 남자와 여자
두 번째로 공통된 점은 신의 경고를 받아들여 목숨을 건진 사람은 반드시 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두 사람(남자와 여자, 혹은 자식을 데리고)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의 노아와 그의 처,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데우칼리온과 피라가 그들이다. 또 아일랜드의 서사시에 나오는 비트와 빌렌, 웨일즈의 전설에서는 듀에이엔과 듀에이위티가, 바스크인 전설의 조상인 남편과 아내도 그러하다. 똑같은 양상이 대서양의 반대편에서도 보인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오, 아즈텍인, 브라질의 인디오의 전설에도 항상 홍수 속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이다.

다음으로 공통되는 특징 점은, 신의 경고를 받아들여 홍수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이 갖가지 동물을 데리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성서의 노아와 마찬가지로, 수메르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 인도의 마누, 보르네오의 트로우, 북미 인디언의 에토시, 고대 멕시코의 나타 등이 그러하다.

③ 산에 정박한 배
홍수로 불어난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목숨을 건진 사람은 물 속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나타낸 산꼭대기에 상륙한다.

 
'나틸산에 이르러 배가 멈추었다 나틸산이 배가 나아가는 것을 막았다. 배는 움직일 수 가 없었다''

『길가메쉬 서사시』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산의 경우는 오늘날 터어키와 러시아 국경지대에 있는 아라랏산이다. 또한 그리스 홍수의 주인공 데칼리온의 경우에는 오프리산(또 다른 이름은 팔나소스산)이, 홍수에서 목숨을 건진 남태평양의 타이트인 선조의 경우에는 피트히트산의 정상이고, 한국에 있어서는 오늘날 중국에 있는 아란산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홍수설화에는 방주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반드시 배들이 언급되는데, 이런 배들은 신의 경고로 말미암아 건조되고 홍수가 끝나면 산의 정상에 남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④ 홍수 후에 나온 새와 무지개
유사점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성서에는 대홍수가 끝났는지를 알기 위해서 방주에서 새를 날려보낸다. 비둘기가 올리브 나무의 가지를 부리로 물어오면 이것은 홍수로 인해 물이 빠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수메르의 홍수전설의 주인공도 노아처럼 육지가 나타났는지를 알기 위해서 새를 날려보낸다. 서인도 제도, 중앙아메리카 및 북아메리카의 인디오 속에 전해져 내려오는 홍수전설의 주인공들도 성경의 노아처럼 행동한다. 즉, 물이 빠지자 날려보낸 새가 부리로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다.

예수님이 지상에 오시기까지 2000년 이상이나 성경을 읽고 있는 인류는 홍수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무지개가 하늘에 걸린 것을 알고 있다. 앞서 길가메시의 서사시가 새겨진 점토판이 고고학적으로 발굴됨으로써 성경 속의 무지개 이야기는 신빙성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연달아 일어나는 재미있는 사실은 아메리카 인디안의 전설과 경전, 그리고 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신화속에도 무지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왜일까?

성경 창세기의 기록과 고대 수메르의 전설에서처럼 아메리카와 태평양의 신화에서도 하늘에 걸린 무지개는 홍수가 끝났음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⑤ 신의 진노를 얻다
무지개 이야기 못지 않게 경이적인 유사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멕시코 아즈텍인의 전설에서는 티틀라카판 이라는 신이 나타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다가올 대이변에 대해서 경고하고 방주를 만들라고 충고한다. 다른 신들은 인간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물이 빠지자 나타와 그의 처가 불을 지펴 물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물고기를 굽는 냄새가 하늘에 다다르자, 신들은 인간 중의 누군가가 살아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불을 피우고 있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늘을 그을리는가?' 하고 신들은 부르짖었다. 분노한 신들은 인류를 말살시키는 작업을 완성시키려 했지만, 티틀라카판신이 목숨을 건진 인간을 살리자고 부탁한다. 성경에서도 노아가 불을 피워 재물을 구우며, 하나님은 이 냄새를 맡고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성서의 한 구절이 나온다. 바빌론의 신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홍수 뒤의 제물을 굽는 냄새를 맡은 신들은 파리떼처럼 모여든다. 이 냄새를 맡은 신들은 누군가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함께 살아남았다는 것을 깨닫고, 멕시코의 신처럼 대단히 분노하여 살아남은 인간을 죽여 없애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다가올 홍수를 인간에게 경고한 물의 신 에어가 등장하여 이 신의 중재에 의해 인간들의 생명을 건진다.

지금까지 이러한 각지에 남아있는 동서양의 홍수전설의 유사점들을 미루어볼 때, 그 근저에는 인류의 기억에 깊은 각인을 남긴 어떤 실제적 사건이 존재했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노아와 그의 가족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벨탑의 혼란에 의해 노아의 후손들이 지구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고, 각 대륙과 섬들에 정착한 노아의 후손들이 각기 뿌리를 내린 지역의 문화나 풍토성에 영향을 받아 창세기 홍수와 방주의 기본골격은 어느 정도 유지한 채 지역과 민족성에 따라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왔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원전(原典)에서 광이 윤색되고 변질되는 형태로 구비전승(具備傳承)되면서, 종국적으로 원래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홍수이야기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홍수전설로 남게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면 태평양의 피지섬에선 창세기에 나오는 직사각형의 방주(Ark) 형태가 피지섬 원주민들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고 생활에 유용하게 쓰이고 가장 친숙한 카누(Canoe)의 형태로 변색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홍수에 의한 격변의 증거: 여러 민족의 전설과 세계 도처에 남아있는 대홍수의 흔적

이러한 격변설이 전지구적인 사건이었다면, 그리고 당시 사람의 수명이 수백세였다면 홍수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왔을 것이며, 세계 도처에 많은 증거들을 남겼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도처에, 그리고  여러 민족의 전설 속에 지구적인 대홍수에 관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대홍수 전설들
현재 지구상의 200여 부족이 270여 종의 홍수에 관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표 3). 그 지역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다는 바벨로니아 지방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에짚트, 중국, 인도, 페루, 브라질, 하와이, 피지, 수마트라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망라한다. 그 내용은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된 것은 홍수에 의한 우주적 격변, 구원받은 인종의 씨앗, 방주의 준비, 인류의 범죄, 신의 노여움, 구원받은 가족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내용은 노아홍수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Randy L. Wysong; Creation-Evolution: The Controversy, p 386, Inquiry Press, Midland, Michigan, 1978]

후레이져 (James Frazer, 1918)는 <구약성서 속의 민간전승> (Folklore in the Old Testament)에서 전 세계 지역에서 138 개의 홍수전설을 수집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네 가지의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홍수를 야기한 도덕적 문란이며, 둘째는 신이 사람에게 홍수를 미리 예보했다는 사실이고, 셋째는 구원받은 몇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의 멸절과 마지막으로 동물들이 홍수의 시작과 종료를 알려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밖에 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큰 배가 동원되었다는 내용도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홍수전설을 연구했던 커스탄스(1979) 역시 각 나라의 전설 속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하였다. 홍수의 원인이 인간의 타락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홍수에 대한 예고가 있었다. 인류가 모두 멸절했으나 일부가 생존하였고, 현생인류는 그 생존자의 후손이며, 홍수를 전후하여 동물들(특히 새들)이 홍수의 진척상황을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홍수 후에 주인공들이 신께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내용 등이다. [Arthur C. Custance; Flood Traditions of The World, The Flood: Local or Global?, pp 67-106, Grand Rapids, MI, 1979]


홍수에서 인류를 구원한 사람의 이름을 중국 전설에서는 ‘누와 (Nu-wah)’ 라 하였다. 중국 남부의 고산지방에 사는 묘족(苗族 Miao)들은 지금도 제사 때마다 선조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전통적인 주술문을 낭송하고 있는 데, 그 내용 역시 노아의 홍수장면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컨데, 묘족의 전승은 대홍수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흙모래 섞인 비가 40 일간 쏟아져 내렸도다. 물은 산들과 산맥을 넘쳐 흘렀도다. 산채 같은 홍수가 계곡과 웅덩이에 뛰어 들었도다. 세계에는 발붙일만한 곳도 없었도다. 사람마다 좌절하며 무기력하게 되고 멸망케 되었도다...그러나, 족장
누아는 올바른 사람이었도다....매우 폭이 넓은 방주를 만들었도다....그와 함께 승선한 동물들은 암수 한 쌍이었도다...그 날이 이르자 물은 멀리 물러갔도다.” [Edgar Traux 저, 임번삼 역; 묘족에게 전승되어 온 창조이야기, 창조, 78호(4,5,6월호), p 4-5, 한국창조과학회, 1992]


 

(2) 아메리카인디언의 돌판그림

미국 디트로이트지방에서 발견된(1896.9.3) 인디언의 돌판을 보면(그림 14) 창세기의 내용을 그대로 도형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다섯 칸이 그려져 있는 데, 첫째 칸에서는 해가 내려 쪼이는 청명한 날에 한 사람(노아로 추정)이 기도하고 있다. 두번째 칸에는 물속에 빠진 사람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으며, 세 번째 칸은 방주가 물 위로 떠오르고 상단 좌우편에는 40 칸의 네모(40주야)가 그려져 있다. 넷째 칸은 방주에서 나온 네 사람(노아, 셈, 함, 야벳으로 추정)이 태양이 비치는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뻐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마지막 칸은 무지개를 바라보는 네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창세기에 이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후 다시는 세상을 홍수로 심판치 않으시겠다면서 그 증거로 세우신 언약의 표시였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 부근에 사는 인디언들은 이 협곡들이 홍수로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홍수에서 인류를 구원한 사람의 이름을 하와이 원주민들은 ‘누’ 라고 하였다. ‘누와’,  ‘누‘ 라는 표현과 ’노아‘는 우연의 일치일까?


(3) 길가메쉬 서사시
대영제국의 런던박물관에서 <서아시아 계형문자>(5권)를 저술한
로린손(Hery Rolinson 1810-1895)의 조수로 일하던 인쇄공출신의 스미스(George Smith 1840-1876)는 36세로 요절했지만, 불후의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쐐기문자의 기록에서 번역한 앗슈르바니팔의 역사>를 저술하여 성서고고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어느 날 라쌈(1852)이라는 사람이 니느웨의 앗슈르바니팔(Assurbanipal 669-627 BC)의 왕실서고에서 발굴한 24,000장에 달하는 방대한 점토판문서(627 BC)의 길가메쉬 서사시(The Epics of Gilgamesh) 11장(326행)을 읽다가 몹시 흥분했다고 전한다. 이 사진은 11장의 토판사진과 당시에 살았던 갈데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11).

스미스가 밝힌 바에 의하면, 이 서사시는 주인공인 영웅 길가매쉬가 수메르의 우룩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생명나무를 찾아 배를 타고 출가하여 겪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커다란 뱀이 생명나무를 삼키자 신은 대노하여 홍수를 일으킨다. 그런데, 11장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가 창세기의 노아홍수의 기록과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치한다. [N.K. Sandars; The Story of The Flood, The Epic of Gilgamesh, Chapter 5, Penguin Books, London, 1972]  


 


(4) 에블라의 창조이야기

페티나토(Giovani Petinato 981)는 <에블라의 고문서>(Archives of Ebla)에서 에블라 지역에서 114개의 2개 국어 번역사전이 발견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모세보다 천여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므로, 이러한 증거만으로도 모세 때에 문자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개발가설(開發假說)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블라의 창조이야기는 기원전 16세기의 다른 바벨론의 기록들(Enuma Elish, Epic of Atrahasis)과는 매우 다르다고 한다. 이러한 증거들은 진화론적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창세기가 쓰여지기 천여년 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지구가 없었을 때에 그것을 만드셨고 낮의 빛이 없었을 때 그것을 만드셨고 월광이 아직 없었을 때 계셨도다.“

(5) 한자의 증언과 천단(天壇)

중국 한자는 삼황오제 시절 황제의 신하 창힐 (蒼頡 Tsieng Chih)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Hsin Cheng Yu; Ancient Chinese History, p 6, Taiwan Commercial Press, Taipei,  1963]. 한자는 처음에는 상형문자로 출발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표의문자(뜻글자)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상형표의문자 속에 창세기의 사건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이 싱가폴의 강목사 (C.H. Kang)와 미국의 생리학자인 넬슨 여사(C.H. Kang & E.R. Nelson)가 260여개의 한자를 풀이함으로써 밝혀지게 되었다. [하현일 역; 창세기와 중국문자, 인쇄계사출판국, 서울, 1984, 원문은 The Discovery of Genesis, Thai Watana Panich Publishing Co, Bangkok, 1979]
이러한 창세기의 내용은 진시황 때 이사(李斯 220 BC)가 한자를
인장문자로 통일시키기 이전의 고대한자 속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중국문자는 전설적인 은나라(1711-1122 BC 추정)의 폐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甲骨文字)와 청동기 그릇의 안쪽에 새겨진 청동글자이다. 지금의 한자는 허신(許愼 86 BC)이 표의문자를 분석하여 집필한 설문문자(說文文字 120 AD)를 토대로 하고 있다. [전광호, 우재태역; 고대한자 속에 감추어진 창세기 이야기, pp 26-29, 인천, 1996, 원문은, Etherl R. Nelson, Richard E. Broadberry; Genesis and The Mystery: Confucius Couldn't Solve, CPH, St. Louis, Revised, 1994]


이 책들에 의하면, 공자(551-479 BC)가 쓴 서경(書經)에 기록하기를 순임금(2230 BC)이 “상제께 제사를 드렸다”고 했으며 [James Legge; The Chinese Classics(vol. 3), The Shoo King: Cannon of Shoon, Southern Material Center Inc. Taipei, pp 33-34, 1983] 그 내용은 창세기의 내용과 유사한 것이라 한다. 황제가 일년에 두 번씩 드렸다는 국경제사 봉선제(封禪祭 Sacrifice Offering)는 은나라 때부터 2천년간 계속되었으나, 기원전 6세기경부터 도교를 비롯한 민간종교가 등장하고, 기원전 3세기 경에 진시황의 분서갱유, 그리고 1세기 경에는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옴으로써 다신론이나 범신론적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15세기에 이르러 청조(淸朝)는 다시 북경남쪽에 천단(天壇 1420)을 만들고, 황천상제(皇天上帝)께 제사를 지냈다(그림 15). 그 후(1539), 천단의 남쪽에는 75미터의 3층 제단을 세우고 숫소를 번제로 드리고 주문을 외우며 제사를 지내어 오다가, 이 제사의식이 청나라가 망하면서(1911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한다.


넬슨 등이 저술한 책에 의하면 263자의 한자 속에 창세기의 기록이 내포된 한자들이 나오는 데, 그 중 몇 자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노아의 여덟(八) 식구(口)가 대홍수를 피하여 탔던 방주(舟)는
배선(船)자에 잘 나타나 있다. 홍수의 홍(洪)자는 여덟 명(八)이 하나로(一) 연합하여(手) 홍수(水)를 맞은 사실을 나타낸다. 떠다닐 연(沿)자는 여덟(八) 식구(口)가 물(水)위에 떠다녔음을 의미한다. 노아가족들(八)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이 낮에 사람들이 일하러(工) 나가 텅빈 상태를 공(空)이라 고증한다. 즉, 여덟 사람이 한 지붕아래 있었던 동굴(穴)이 일(工)을 하러 나가면 텅 비게 된다(空)는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하나님께 제사드린 희생(犧牲)제물은 소(牛)나 양(羊)중에서 좋은 것(秀)으로 골라 창(戈)으로 죽여서 드리는 번제였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어린양(羊) 중에서 가장 좋은 것(秀)을 창으로 잡아(戈) 희생제를 드릴 때에 의롭다(義)고 칭함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현일 역; ibid, pp 181-190]


(6) 중동지방의 지명들
지명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노아의 홍수기사에 나오는 아라랏산은 옛 지명 그대로이다. 산 주변에 사는 원주민들은 자기들은 노아의 후손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토판문자가 만들어졌고, 길가메쉬 서사시가 기록된 바벨론 지역(지금의 이라크)의 두 강의 이름도 창세기에 나오듯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히브리어로 힛데겔)로 불리우고 있다. 역시 창세기에 나오는 홍수 전후의 수많은 중동지역의 지명과 족속들, 노아의 10대손 아브라함이 살았다는 갈데아 우르(Ur)와 하란(Haran)이라는 성경에 나오는 옛 지명도 오늘날 그대로 남아 옛날의 역사를 무언으로 증언하고 있다.

 

(7) 노아방주의 발견
창세기에 기록된대로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해발 5,160m)의 정상부분 어딘가에 묻혀 있을 가능성에 대하여 많은 탐험가들이 발굴 작업에 나섰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경우만 하여도 1856년 이래 23회에 200명 이상의 탐험가들이 빙하 속에 묻힌 방주를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1883년에 터키정부도 노아의 방주를 발견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창세기에 기록된 4-5천년 전의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이 판명되는 의미 외에도 오랜 전설적 사건이 현실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것이었다.


아라랏산의 정상은 두 봉우리(5,160m와 5,126m)로 구성되어 있고, 두 봉우리 사이에는 거대한 빙하가 있으며, 일년내내 강풍이 휘몰아치기 때문에 그 속에 묻힌 방주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반면에, 그러한 추위 때문에 지금까지도 방주가 보존되어 왔을 것으로 추측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탐험가들이 집중적으로 탐색하는 지역이 터키, 러시아의 국경선이 만나는 아르메니아의 아그리 다기(Agri Dagi)지역이다. [William H. Stiebing; Ancient Astrounauts, Cosmic Collisins and Other Popular Thorie About Man's Past, Prometheus Books, pp 22-23, Buffalo, NY, 1984], [Lloyd R. Bailey; Noah: The Person and the Story in History and Tradition, p 72, University of South Caliornia Press, 1989]
이러한 방주에 대한 증언은 매우 긴 역사를 가진다. 유대인 출신의 로마의 역사가인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를 비롯하여, 살라미스의 주교인 살라미스(4C), 초대교회의 교부인 크리소스톰, 중세기의 마르코 폴로(15C), 올리어리우스(Adam Olearius 1662), 윌리엄 휘스튼(1737), 에스토니아의 도르팟대학 교수인
패롯(Friedrich Parrot 1829), 터키주재 영국대사인 브라이스(James Bryce 1876) 등이 방주의 존재를 증언했거나, 직접 등정하여 확인했다고 말하고 있다. 터키정부는 지진(1883.5.2)으로 파괴된 그 지역을 영국대사관원들과 같이 조사하던 중 지상으로 4-50피트가 솟아 오른 거대한 목재선박의 구조물을 발견하고 노아의 방주라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The British Prophetic Messenger, Summer, 1886], [The Chicago Tribune, August 10, 1983], [New York Herald, August 10, 1883]
네스토리아파의 지도자인
죠셒(John Joseph 1887)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방주를 목격했으며 (1887.4.25), 그의 이야기는 친구인 코언(1939)에 의해 상세히 기술되었다. [Frederick B. Coan; Yesterdays in Persia and Kurdistan, pp 163-165, Claremont: Saunders Studio Press, 1939]. 죠셒은 세계종교회의 의장인 배로우스의 초청으로 시카고 박람회에서 탐사결과를 보고하였다(1893). 그 때에 그는 말하기를 방주는 길이가 300야드에 100피트의 높이이며, 방주의 한 쪽 끝부분이 파손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Charles Beritz; The Lost Ship of Noah: In Search of the Ark at Ararat, p 26, G.P. Putnam's Son, New York, 1987] 벨지움 금융인들의 지원으로 죠셒은 방주의 일부를 분해하여 시카고 박람회장으로 옮기고자 했으나, 터키정부의 입국거부로 실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Tim La Haye, John C. Morries; The Ark on Ararat, Creation Life Publishers, El Cajon, Chicago, p 26, 1976]


20세기에도 탐험 활동은 계속되었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미국인 하고피안(George Hagopian 1902-10)은 돌처럼 굳은 방주를 목격했다고 했으며(William H. Stiebing 1984),  제정러시아의 로스코비츠키(Vladimir Roskovitsky 1916)는 아라랏산에서 선체의 1/4이 물속에 잠긴 전투함 크기의 물체를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Vladimir Roskovitsky; Noah's Ark Found, The New Eden, Los Angeles, 1940 cited by La Haye & Morries, The Ark on Ararat, pp 76-70, 1976]. 이러한 보고를 받은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스 2세는 150명의 군인들을 보내어 방주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에 대해 백러시아군의 19연대 연대장이었던 쿠오 대령(Col. Alexander Koor 1915-16)은 자볼로츠키 소위가 아라랏산의 두 봉우리 사이의 등마루에서 처음으로 방주를 발견했다고 증언했으며 [Kelly L. Segraves; Search for Noah's Ark, p 28, Beta Books, San Diego, 1975], 로스코비츠키는 관측한 내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방주는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높은 천장을 가진 큰 방들도 몇 개가 발견되었다...울타리의 두께는 2피트 정도로 코끼리보다 10배나 큰 동물들을 가두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사용한 나무의 재질은 서양협죽도(Oleander)로 겉에는 페인트를 칠하면 전혀 썩지 않는다. 이 방주는 대부분의 시간을 냉동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Vladimir Roskovitsky; New Eden Megazine, CA, 1939 cited by La Haye and Morries, The Ark on Ararat, p 79, 1979]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보고서는 볼세비키 혁명(1917. 2. 8)으로 황제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그 후 이와 관련한 아무런 자료도 발견할 수 없어 신빙성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Berlitz; ibid, pp 32-34]


미국조종사들이 찍어 성조지(The Stars & Strife)에 실렸던 사진들도 1943년에 모두 분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미국 조종사들이 1960년 봄에 배와 같은 구조물을 발견했으나, 소련군의 감시로 사진을 찍지 못하고 귀향했다고 한다. [Beritz; ibid, p 42].


최근에 방주를 가장 많이 목격한 사람은 프랑스의 나바라(1974)이다. 그는 1952년에 처음으로 방주탐사에 나서 얼음 밑의 거대한 배모양의 물체를 발견하였다. 1955년의 탐사 시 그의 아들과 같이 방주를 발견하고 5피트의 나무조각을 잘라내었다. [Fernand Navarra; J'ai trouve l'ache de Noe, Paris, 1956, Noah's Ark: I Touched It, pp 36-69, Logos International, Plainfield, NJ, 1974] 이 나무는 에짚트, 스페인, 프랑스 등의 박물관으로 보내어졌고, 분석결과 나무의 종류는 백참나무(white oak)이며, 최소 5,000년 이전의 것으로 발표되었다. [Navara; ibid, pp 125-132] 그러나, 미국의 분석기관에서는 1,190-1,340년의 젊은 연대치가 나왔다.


미국의 와이어트(R.E. Wyatt)는 11년간(1977-1987) 23회나 현장을 조사하고 수많은 증거물을 수집하였으며 '배 모양의 구조 속에 대형의 구조물이 있음을 확인“하고 노아의 방주가 틀림없다고 주장하였다. [Ronald E. Wyatt; 이것이 노아방주다, pp 20-26, 크리스챤월드, 1991]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터키 정부는 방주가 발견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광목적으로 고속도로를 놓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많은 개인이나 단체들이 방주의 목격담을 증언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창조연구회(ICR)의 현 회장인 죤 모리스가 이끈 세 번의 탐사결과와 인공위성 (ERTS, SKYLAB)이 찍은 사진들(1972-1974)이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John C. Morries; The Search for Noah's Ark, Impact, ICR, No. 125, 1983]


이상에서 노아의 방주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살펴보았으나 아직은 그러한 증거들이 노아의 방주라고 단언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증거들이 노아의 방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탐험과 연구가 진행되어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8) 갑작스러운 빙하기의 도래
빙하기는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5-6회의 대 빙하기와 여러 번의 작은 빙하기를 거쳐 일만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아의 홍수 후에 갑자기 찾아온 추위와 격변에 의한 충격으로
맘모스와 같은 거대동물들이 얼음 속에 냉동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맘모스가 시베리아와 알라스카 및 카나다의 북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은 이 지역들도 홍수 이전에는 아열대 기후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울러, 빙하가 북극지역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맘모스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은 채 싱싱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갑작스러운 기후의 변화로 냉동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맘모스의 입과 위 속에서는 소화가 채 되지 않은 음식물들이 발견되기도 하는 데, 이는 음식물을 소화할 겨를도 없이 어떤 급변적인 사태가 발생하여 동사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일과정설에서 설명하는 이론대로 이들의 사체가 서서히 냉동되었다면 이미 부패되었거나 다른 동물들의 밥이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9) 공룡에 관한 유적들 

북중미 지방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현생인류와 공룡의 발자국은 이들이 같은 시대에 살았음을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1,800년대 말에 그랜드 캐년 부근의 하바수바이 계곡의 바위에서 공룡과 사람이 같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발견되었다. 아프리카의 로데지아의 살즈버리 동굴에서도 사람과 브론토사우루스 공룡(Brontosarus)의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다. [R.L. Wysong; Creation-Evolution: The Controversy, Inquiry Press, p 378, Midland, Michigan, 1981]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멕시코 원주민들의 토우(土偶)중에는 한 여인이 등에 갑주를 달고 있는 새끼공룡의 목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그림 16). 미국의 한 동굴 속에 있는 벽화에는 공룡과 사람, 새들의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공룡에 대해서는 세계최고(最古)의 기록인 성경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이제, 소같이 물을 먹는 하마 (공룡의 오역으로 봄)를 볼지어다...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꼬리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넙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그 뼈는 놋관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같으니“(욥 40;15). 욥이 4천여년 전 사람으로 추정되므로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사람과 공룡이 노아시대의 홍수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공존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1977), 뉴질랜드 근해의 300m 수심에 쳐 놓았던 일본어선(Zuiyo Maru, 大洋水産社소속)의 어망에 해상 공룡인 사경룡(Plesiosaur)의 시체가 인양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은 바 있다. 이 동물은 진화론적으로는 수천만년 전에 멸종한 것이다. 그러나, 2톤이 넘는 거대한 몸체에는 발굴 당시에도 살점이 붙어 있었고, 썩는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고 목격자들은 전한다. 진화론자들의 말대로라면 수천만년간 공룡의 살이 비록 썩은 상태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존재했다고 믿어야 할 터이다. 반대로, 공룡이 지금까지 살았다면 그 동안 주장해 온 공룡의 멸절설도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사경룡의 시체가 지금도 발견된다는 것은 공룡이 최근까지도 사람과 같이 살았다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발견에 당황한 진화론자들은 그 동물이 공룡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일본의 학자들은 틀림없는 공룡이라고 확고하게 주장하며, 일본정부에서는 기념우표까지 발행한 바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괴물의 시체는 물속으로 다시 수장되고 말았다.

 

(10) 내륙에 있는 소금호수들        
대홍수로 바닷물이 모든 육지와 산꼭대기까지 뒤덮었다면, 그리고 육지가 조산활동으로 바닷 밑에서 솟아 오른 것이라면 당연히 지구상의 여러 곳에 소금호수와 소금덩어리가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지
구상에는 소금호수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스라엘의 사해는 염해의 대표적인 예이다. 소금함량이 보통의 바닷물보다 10배 이상 짠 30% 정도이다. 그래서 비중이 높아 사람도 둥둥 뜬다고 하니, 수영이 서툰 사람도 거기에서 시험해 볼 만한 일이다. 몽고에 있는 고비사막의 염호들, 이란의 우르미아호(해발1,470m), 터키동부의 만호(해발1,700m), 안데스산맥의 티티카카호(해발3,800m)등 수많은 소금호수들이 세계 도처에 널려 있다.

민물호수가 물을 방출하지 못하면 수분의 증발로 소금함량이 늘어나 염호가 되리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소금호수가 생성되었을까? 해답은 언젠가 전 지구를 휩쓴 대홍수가 있었고, 홍수가 물러가면서 바닷물이 남은 곳에 염호가 형성되었고, 새로 생긴 빈 호수에 지하수와 빗물이 모여 민물호수를 만든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아라랏산의 해발 2,100m지점에서는 귤크기의 소금덩이들이 무수히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나 호주 및 남미 등지에서 발견되는 엄청난 규모의 암염광산들의 존재도 해수의 증발에 의하지 않고서는 해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홍수 때 형성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11) 격변적 매몰에 의한 화석들
생물들은 죽으면 며칠 만에 부패한다. 아니면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된다. 이것이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들이 화석이 되려면 긴 기간에는 아예 생성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짠 바닷 속에서라 할지라도 화석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거기서도 다른 물고기들의 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만 개의 화석들은 한결같이 옛날에 큰 격변적 사건이 있었음을 무언으로 말해주고 있다.

  입이나 위속에 소화가 안된 음식물이 들어 있는가 하면, 수영하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고스란히 화석이 되어 있다. 공룡과 맘모스가 무더기로 화석무덤을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부패하기 쉬운 잠자리, 해파리, 식물체와 같은 생물들도 화석으로 발견된다(사진 12). 이는 부패하기 전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격변적 증거가 어디에 또 있을까?



남아프리카의 화석학자인 브룸(Robert Broom)은 20만평에 이르는 카루고원(Karoe)에 8천억 마리의 척추동물들이 묻힌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데, 그 동물의 대부분은 양서류와 파충류라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 UCLA의 지질학 교수인 밀러 교수(W.J. Miller)는 “오늘 날 지구상에 있는 유기체들 가운데 화석으로써 보존되기 좋은 상황 하에서 퇴적되고 있는 유해들은 거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토록 많은 수효의 화석들이 암석층 속에 파 묻혀 있는지 주목할만한 일이다.”고 하였다. 이는 격변에 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다. 격변적 화석형성 이론은 동식물체들이 고온, 고압에 의해 순간적으로 매몰되면서 탄화되었다는 것이다(그림 17).



(12) 잔류지형들 (Relic Landforms)
빙하기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남북지반에서 발견되는 잔류지형이다. 빙하의 흐름에 의해 조성된 이러한 잔류지형은 카나다, 북미지역, 북유럽, 뉴질랜드, 아프리카 지역에 남아 있다. 지금의 기후조건으로는 이러한 지형을 남길 수 없으며, 형성사례도 근간엔 발견되지 않는다. 잔류지형은 “지금과는 다른 기후환경에서 만들어진 지형” (H.F. Garner 1974)을 말하는 데, 세계도처의 지형들은 대부분 잔류지형이다 (Budel & Garner). 이러한 말은 과거의 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격변적 환경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기후 변화로는 그러한 잔류지형들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만; 잔류지형-홍수가 남겨둔 흔적,
창조 120호(5월호), 한국창조과학회, p 7-10,  2000]


  * 언더핏류 (Underfit Streams) ; 하상, 계곡, 준평원처럼 지금의 과정으로는 형성될 수 없는 엄청난 물이 흘러서 만들어 놓은 지형을 말한다. 미국과 유럽의 50% 이상이 언더핏류의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G.H. Dury, 1977).


  * 건조지역의 배수로 (Drainage System) ; 잘 짜여진 하천의 배수망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지금은 건조한 사막지대에서도 그 흔적이 지형으로 남아 있다. 미국의 모하비 사막(Mojavi Desert), 데쓰밸리 사막(Death Valley Desert, California), 페루의 아타카마 사막(Atacama Desert)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 해안절벽 (Inland Sea Cliffs) ; 해변가라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해안절벽들은 한때 전 세계에 급변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카르스트 니들 (Karst Niddles) ; 이것은 단단한 층에 깔린 석회암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물리화학적인 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중국의 계림(桂林)과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다.


  * 잔류 모래언덕 ; 일명 에르그스(Ergs)라고 한다. 충적층의 암석이 빙하의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모래가 되고 식생에 의해 안정한 형태가 된 것이다. 미국의 네브라스카주의 2/3 이상이 모래언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 건조 호수층(Dry Lake Beds) ; 물이 없는 호수바닥층을 말한다. 이러한 지형은 한 때 그 곳이 물이 가득한 호수였음을 말한다. 미국 서부의 건조지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3) 인구의 증가
현재의 인구가 60억이다. 첫 인류가 출현하여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다면 이러한 숫자는 설명하기가 어렵게 된다. 노아(4,000-5,000년 전 추정)의 네 식구로부터 연간 인구증가율을 0.5% (현재는 2%)로 하여 계산하면 4,000년 정도로 충분하다. 엇셔가 주장한 대로 노아홍수가 4,300년 전에 일어났고,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현생인류가 유래했다면 (창9;19), 한 세대를 43년으로 계산하면 100 세대가 조금 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비아미 족의 전설들 (The BIAMI Legends) : 파푸아 뉴기니 식인종족에게 전해져 온 창조와 홍수 이야기
비아미(Biami) 족은 파푸아 뉴기니(Papua New Guinea)의 서쪽 지방에서 살고 있는 종족으로 약 4000-5000 명 정도의 인구 수를 가지고 있다. 14년 전(1970년)까지 그들은 파푸아 뉴기니의 마지막 식인 종족 이었다. 13년 전 톰호이(Tom Hoey)와 다른 2명의 선교사가 이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언어를 배운 후, 비아미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와 노아 홍수에 대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톰호이와 다른 선교사들은 비아미족이 4000년 이전의 바벨탑을 떠나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 전승되어온 이야기들이 창조주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원주민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켜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난 13년 동안, 비아미 족의 많은 수가 크리스챤이 되었다. 선교사들이 들어간 후 13년 동안에 그들은 식인습관과 야만적인 관습들을 버렸고, 비아미 교회는 매우 강하게 부흥되어 현재 15개 이상의 지역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현재 교회의 지도자는 크리스챤이 되기 전에 종족의 지도자급 사냥꾼이었다.

비아미의 창조 이야기

“처음 세상에는 단지 남자들만 살고 있었다.1 세상의 첫 번째 남자는2 한 작은 야자수가 계속해서 우는 것을 들었다. 남자는 작은 야자 나무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자신을 위해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칼을 가져와3 작은 야자수를 여자의 모양으로 조각하였다.4 그는 여자의 기관들을 모두 조각하였다.5 그리고 그가 나무에 조각한 코 안으로 생명의 호흡을6 불어넣었다. 여자는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각주 :

1. 비아미 족의 전승되어온 이야기에는 남자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관해서는 꽤 모호했다. 창세기에서는 매우 명확하다 - 하나님은 흙(dust)으로 아담을 만드셨다.

2. 비아미 족의 이야기에 최초에 이 세상에 어떤 다른 남자들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남자가 있었다. 창세기는 확실하다 - 다른 어떠한 남자도 없었다.

3. 칼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종류의 날카로운 도구를 의미할 수도 있다.

4. 야자수 나무(palm tree)는 여자 또는 소녀의 형체로 조각되어졌을 것이다.

5. 여성 기관들의 조각에 대한 묘사는 전설들의 일부에서 어느 정도 외설스럽다.

6. 비아미 족들이 창조주 하나님이 최초의 남자인 아담에게 생명의 호흡을 어떻게 불어넣었는지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들었을 때, 그들은 남자의 기원에 관한 성경의 기록이 그들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 강한 친근감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의 매우 명확한 세부사항에 대해서 그렇게 확신하지는 않았다. 

비아미의 홍수

“한때 전 세상을 덮은 거대한 홍수가 있었다. 홍수는 비아미의 조상만을 제외하고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을 쓸어버렸다.1 그들의 조상들은 고비아(Gobia)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나무의 껍질들을 꿰어 망태기(string bags)를 만들었다. 그들은 농작물과 그들의 모든 동물들, 그들의 개들, 그리고 그들의 돼지들을 나무에 실었다. 홍수 물이 땅 위로 점점 오르자, 사람들은 나무 위로 더 올라갔다. 나무는 물이 올라가면서 물 위로 자랐기 때문에, 그들은 이 나무의 가지에서 안전하였다.

물들이 전 세계의 표면에서 물러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무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땅들은 진흙 투성이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농작물들을 심었고, 동물들은 번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무로부터 멀리 나아갔고, 땅들에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나무 아래로 내려왔던 사람들은 사모스, 쿠보, 고바시스, 에토로의 조상들이 되었다.“

각주 :

1. 비아미 족은 그 나무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비아미 족과 그들 주변의 모든 다른 종족들의 조상들이었으며, 그들은 백인 선교사가 오기 전까지 어떠한 다른 사람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2. 창세기와 이 이야기의 유사점에 주목하라.

    .거대한 홍수가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은 죽었다.

    .그들은 모든 동물들과 먹을 식물들을 준비했다.

    .그들은 홍수 이후 땅에 재분포 되었다.

3. 이 이야기는 노아 홍수와 바벨탑에 대한 성경 이야기의 확실성에 대한 인류학적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랜드 캐년의 전설 (Grand Canyon Legend) : 그랜드 캐년 협곡에 살고 있는 하바수파이 인디언들의 전설

 그랜드 캐년의 깊은 협곡에서 살고 있는 하바수파이(Havasupai) 인디언들의 전설에 의하면, 그랜드 캐년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생겨났다.
“세상에 사람이 있기 전에 선의 신 토차파(Tochapa)와 악의 신 호코마타(Hokomata) 라는 두 신이 있었다. 토차파에게는 모든 살아있는 것의 어미가 되기를 바랬던 푸케에( Pu-keh-eh) 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다. 악의 신 호코마타는 그러한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막아야한다고 결정했다. 그는 거대한 홍수를 일으켜 지구를 덮었다. 선의 신 토차파는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를 쓰러뜨린 후, 나무의 속을 파내었다. 그는 속이 빈 나무 안에 푸케에를 넣었다. 물이 넘치고 홍수가 지구를 덮었을 때, 그녀는 즉석에서 마련된 보트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마침내 홍수 물이 감하여지고, 산들의 봉우리가 나타났다. 강들은 만들어졌고, 그들 중 하나는 엄청난 물줄기로 땅을 갈라 그랜드 캐년이 되었다.

통나무 안에 있던 푸케에는 새로운 땅 위로 나왔다. 그녀는 앞으로 나갔고, 비어 있는 세계를 바라보았다.

육지가 말랐게 되었을 때, 거대한 황금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랐고, 땅을 따뜻하게 하였으며, 그녀를 임신하도록 하였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한 남자 아기를 낳았다. 후에 폭포가 그녀를 임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여자 아기를 낳았다. 이 두 인간 어린이가 결합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태어났다. 첫째가 하바수파이였다. 그리고 토차파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들에게 순수한 물이 항상 풍성히 있을 것과 아름다운 땅 캐년에서 영원히 평화스럽게 살라고 말하였다.“   

물론 이것은 노아의 날에 일어난 전 세계적인 홍수를 확인할 수 있는 (변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설명이다. 모든 인류는 노아의 후손이라는 사실과 공통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지하는 수많은 증거들에 이것은 또 하나의 증거를 보태고 있다.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The Sixteen Grandsons of Noah)
 Harold Hunt, Russell Grig

수많은 고대의 지명들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노아 후손들의 이름이 남아 있다. 역사적 기록은 노아의 홍수가 사실이었으며, 살아 남은 자들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로부터 나왔을 때, 그들은 지구상에 유일한 ‘사람들’ 이었다. 그 이후, 지구는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과 그들의 부인들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에 의해서 채워졌다. 창세기 10장에는, 노아의 16명의 손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노아의 16명의 손자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한 인물들임을 확신시켜줄 수 있는 풍부한 증거들을 남겨 놓으셔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름들이 그들의 실제 이름들이고,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창세기 10장) 그들의 자손들이 전 세계로 흩어진 후 다양한 고대 왕국들을 건설했다는 말씀도 사실이었음을 입증시켜 주고 계신다.
홍수 이후의 첫 번째 세대는 매우 오래 살아서 어떤 이들은 그들의 아들, 손자, 증손자보다도 오래 살았다. 이러한 사실이 그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였다. 노아의 16명의 손자들은 각 씨족의 족장이 되었으며, 그들 지역에서 커다란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1. 각 지역 사람들은 그들 조상의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2. 그들이 거주하는 땅, 주요 도시, 강 등의 이름 또한 그들 조상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3. 가끔씩 각 나라들은 그들의 조상을 숭배(worship)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우 일반적으로 조상의 이름 뒤에 그들 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장수한 조상을 그들의 신으로 추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해서, 노아 후손들의 이름은 잃어버릴 수 없는 방법으로 보존되어져 왔으며, 인간의 모든 흔적들은 사라져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검증해 볼 것이다.


1. 야벳(Japheth)의 일곱 아들


창세기 10장 1~2절 :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1) 고멜 (Gomer)

노아의 손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사람은 고멜(Gomer)이었다. 에스겔서에는 도갈마(Togarmah, 고멜의 아들)와 함께 고멜의 초기 자손들이 북쪽 지역(극한 북방)에 살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에스겔 38:6). 현재의 터어키(Turkey) 지방이 신약시대에 갈라디아(Galatia)라 불리던 지방이다. 유태인 역사학자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살던 시대인 AD 93년경에는 갈라디아인(Galatians) 또는 골(Gauls)은 이전에는 Gomerites 라고 불려졌었다.1

 

그들은 현재 프랑스와 스페인이라 불리는 서쪽지방으로 이주하였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는 고멜의 자손들 이후에, 골(Gaul)이라고 불려졌었으며, 현재도 스페인의 북서쪽은 갈리시아(Galicia)라 불리고 있다. 


고멜의 자손들(Gomerites) 중 몇몇은 현재 웨일즈(Wales)라 불리는 곳까지 더 멀리 이주하였다. 웨일즈의 역사학자인 데이비스의 기록에 의하면, 전통적인 웨일즈 사람들은 고멜의 자손들이 프랑스로부터 영국의 섬으로 와서 정착한 것이고, 그 시기는 대략 대홍수로부터 약 3백년이 지난 후였다고 믿고 있다.2 또한 그의 기록에 의하면, 웨일즈의 언어도 Gomeraeg (그들의 조상인 고멜의 이름에서 비롯된)라 불려졌었다고 한다.


그들 씨족의 다른 무리는 아르메니아(Armenia)에 속해 있는 땅에 정착하였다. 고멜의 아들들은 ‘아스그나스(Ashkenaz)와 리밧(Riphath)과 도갈마(Togarmah)’ 였다 (창10:3).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도갈마와 아스그나스의 자손들이라고 주장한다.3 고대 아르메니아는 터어키에까지 그 지경이 닿아 있었다. 터어키(Turkey) 라는 지명도 도갈마로부터 파생되어졌을 것이다. 그들 중에 다른 이들은 독일로 이주하였다. 아스그나스(Ashkenaz)는 독일(Germany)의 히브리어 명칭이다. 


2) 마곡 (Magog)

다음 손자는 마곡(Magog) 이다. 에스겔서에 의하면, 마곡은 북쪽에 살았다(에스겔 38:15, 39:2).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Magogites 라고 불려졌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을 스키타이인(Scythians) 이라고 불렀다.1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지금의 루마니아(Romania)와 우크라이나(Ukraine)를 포함한 지역의 고대 이름도 스키타이(Scythia) 였다.4


3) 마대 (Madai)

그 다음 손자는 마대(Madai) 이다. 셈의 아들인 엘람(Elam)과 함께, 마대는 현재 이란사람들의 조상이다. 요세푸스는 마대의 자손들이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서 메대(Medes)라 불려졌었다고 말한다.1 구약에서 메대가 언급될 때마다, 히브리어로는 마대(Madai(maday))라고 쓰여졌다. 키로스(Cyrus, 페르시아(바사)제국 건설자)시대 이후에, 메대는 (한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항상 페르시아인들과 함께 언급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법에 의해서 지배받는 하나의 왕국이었다. - ‘메대와 페르시안인의 법 (다니엘 6:8,12,15)’. 이후에 그들은 간단하게 (메대를 생략하고) 페르시아인들(Persians)로 불려졌다. 1935년 이후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이란(Iran) 이라고 불렀다. 메대인들은 또한 ‘인도에도 정착하였다’.5


4) 야완 (Javan)

다음 손자 이름인 야완(Javan)은 그리스(Greece)의 히브리 단어이다. 그리스, 그리시아(Grecia) 또는 그리시안(Grecians)은 구약에 다섯 번 나타나며, 그 때마다 항상 히브리어로 야완이라 쓰여졌다. 다니엘은 ‘그리시아의 왕(다니엘 8:21)’ 이라는 단어를 인용했는데, 문자 그대로는 ‘야완의 왕’이었다. 야완의 아들들은 엘리사(Elishah)와 달시스(Tarshish)와 깃딤(Kittim)과 도다님(Dodanim) (창 10:4) 이었는데, 모두 그리스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명칭인 Elysians는 엘리사(Elishah)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물려받았음이 분명하다. 달시스(Tarshish) 또는 다서스(Tarsus)는 실리시아(Cilicia, 현재의 터어키) 근방에 위치했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깃딤(Kittim)은 키프로스(Cyprus)의 성경적인 이름이다.6 그리스 사람들은 쥬피터 도다네우스(Jupiter Dodanaeus)라는 이름으로 쥬피터 신을 숭배했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야벳(Japheth)과 야완의 네 번째 아들인 도다님(Dodanim)에서 파생된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신탁소(oracle)는 도데나(Dodena)에 있었다.


5) 두발 (Tubal)

다음은 두발(Tubal) 이다. 에스겔은 그를 곡(Gog)과 메섹(Meshech)과 함께 언급하였다 (에스겔 39:1). 약 BC 1100년 경에 앗시리아의 왕이었던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 1세는 다발리(Tabali)라 불렸던 두발의 자손이었다. 요세푸스는 그들의 이름을 도벨리트(Thobelites)라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후세에 이베리아인들(Iberes)로 알려졌다.1


'요세푸스 시대에 그들의 땅은 로만 이베리아(Romans Iberia)로 불려졌었으며, 현재에는 (구소련 연방인) 그루지아(Georgia) 지방에 속하는데, 지금도 그 곳의 수도는 트빌리시(Tbilisi)로서 두발(Tubal)이라는 이름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이곳으로부터 코카서스 산맥을 가로질러서 그 사람들은 정확하게 북동쪽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 그들 부족의 이름을 따서 강의 이름도 도볼(Tobol)이라 불렸고, 토볼스크(Tobolsk)라는 유명한 도시의 이름도 불려지게 되었다.' 7


6) 메섹 (Meshech)

다음 손자의 이름인 메섹(Meshech)은 모스크바(Moscow)의 옛 이름이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임과 동시에 그 도시를 둘러싼 지역의 명칭이기도 하다. 현재에도 그 주변 지역 중 메스체라 노렌드(Meschera Lowland)는 여전히 메섹의 이름을 따라 불려지고 있으며,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고 있다.


7) 디라스 (Tiras)

요세푸스에 의하면, 디라스(Tiras)의 자손들은 디라시안스(Thirasians)라고 불리웠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이름을 트라시안(Thracians)으로 바꾸었다.1 트라키아(Thrace)는 남쪽으로는 마케도니아(Macedonia)로부터, 북쪽으로 다뉴브강, 동쪽으로는 흑해까지 이르렀다. 이들이 유고슬라비아(Yugoslavia)를 이루게 된다. 세계대백과사전에 의하면 '트라키아 사람들은 야만적인 인도-유럽계통의 사람들로써, 전쟁과 약탈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다.' 고 되어있다.8 디라스는 그의 자손들로부터 두라스(Thuras), 또는 번개의 신인 토르(Thor)로써 숭배를 받았었다.



2. 함(Ham)의 네 아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세기 10:6)


1) 구스 (Cush)

함(Ham)의 자손들은 주로 남서부 지역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살았다. 성경에서는 자주 아프리카(Africa)를 함의 땅이라고 부른다(시편105:23, 27; 106:22). 노아의 손자 이름인 ‘구스(Cush)’ 는 옛적 에디오피아(Ethiopia, 아스완 남부로부터 카르툼까지)의 히브리어 단어이다 . 예외 없이 영어성경에서의 에디오피아란 단어는 항상 히브리어로 ‘구스’ 라고 기록되었다. 요세푸스는 그 이름을 ‘Chus' 라고 표현하였으며, 심지어 현재에도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또는 아시아인들 모두에 의해서 ’Chusites' 라고 불린다.9


2) 미스라임 (Mizraim)

노아의 다음 번 손자는 미스라임(Mizraim) 이다. 미스라임은 이집트(애굽, Egypt)에 대한 히브리 단어이다. 애굽이란 이름은 구약에서 수백번 언급되고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항상 미스라임이라는 단어로 번역이 된다.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사람(Egyptians)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 미스라임(Abel Mizraim)이라 하였으니~”(창세기 50:11).


3) 붓 (Phut)

노아의 다음 번 손자인 ‘붓(Phut)’의 이름은 리비아(Libya, 이집트의 서부지역)의 히브리어이다. 구약성경에서 세 번 이렇게 번역되었다. 리비아 내에는 고대 붓 강이 있다. 다니엘 시대에 이미 그 이름은 리비아로 바뀌어져 있었다 (다니엘11:43). 요세푸스에 의하면, “붓은 리비아를 창건한 사람이며, 그들은 부타이티스(Phutites)라고 불려졌다.” 9


4) 가나안 (Canaan)

노아의 다음 번 손자인 ‘가나안(Canaan)’ 은 훗날 로마인들에 의해서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고 불리던(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 지역) 지역의 히브리어식 이름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몇 함의 자손들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 10:14~18). 그 곳에는 ‘블레셋(Philistim)' 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것은 Philistines의 조상인 것이 명백하며(후에 팔레스타인(Palestine)이 된 것도 확실하다), 시돈(Sidon)도 그 도시를 처음 창건한 조상의 이름이고, 헷(Heth)도 고대 히타이트족(Hittite)의 조상이었다. 또한 그의 자손들은 창세기 10장 15-18절 사이에 열거되어 있는데, 여부스 족속 (Jebusites, 여부스(Jebus)는 예루살렘의 옛 이름이었음. 사사기 19:10), 아모리 족속(Amorites), 기르가스 족속(Girgasites), 히위 족속(Hivites), 알가 족속(Arkites), 신 족속(Sinites), 아르왓 족속(Arvadites), 스말 족속(Zemarites), 하맛 족속(Hamathites)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들은 가나안에 살았던 고대인들이었다.


함의 자손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자손은 니므롯(Nimurod)이었는데, 그는 바벨론(Babel, Babylon)의 창시자였으며, 시날(Shinar, Babylonia) 땅의 에렉(Erech), 악갓(Accad), 갈레(Calneh)의 창시자였다.



3. 셈(Shem)의 다섯 아들


마지막으로 셈의 다섯 아들을 살펴보자.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창세기 10:22)


1) 엘람 (Elam)

엘람(Elam)은 페르시아(Persia)의 옛 이름이며, 페르시아는 또한 이란(Iran)의 옛 이름이다. 카로스(Cyrus) 시대까지 이 곳의 사람들을 엘라마이트(Elamites)라고 불렀으며, 이것은 신약시대에까지도 여전히 사용되었다. 사도행전 2장 9절에 보면, 오순절날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페르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을 엘람인(Elamite) 이라고 불렀었다. 따라서 페르시아인들은 셈의 아들인 엘람과 야벳의 아들인 마대(Madai)의 자손(앞의 내용 참조)들이었던 것이다. 1930년대 이후로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이란이라 칭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서 유명해진 ‘아리안(Aryan)’ 이란 단어는 '이란(Iran)' 이라는 단어로부터 왔다. 히틀러는 순수한 아리안 혈통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우수한 민족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바로 ‘아리안’ 이라는 민족은 셈족(Semites)과 야벳족(Japhethites)이 합쳐진 혼합된 민족이었던 것이다.


2) 앗수르 (Asshur)

앗수르(Asshur)는 앗시리아(Assyria)의 히브리 단어이다. 앗시리아는 고대의 거대한 왕국 중의 하나였다. 구약에서 앗시리아인이나 앗시리아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마다, 그것은 앗수르(Asshur)라는 단어로부터 해석이 되었다. 그는 그의 자손들로부터 숭배를 받았었다.


'참으로 앗시리아 제국이 지속되었던 동안(BC 612년경까지), 전쟁과 외교관계, 그리고 해외소식들은 그의 동상 앞에서 매일 읽혀졌으며, 모든 앗시리아의 왕들은 조상인 앗수르의 신성시된 영혼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었다.'10


3) 아르박삿 (Arphaxad)

아르박삿(Arphaxad)은 칼데아(Chaldeans) 사람들의 조상이었다. 이것은 허리안 서판 (Hurrian(Nuzi) tablets)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는 칼데아의 창시자를 아립허라(Arip-hurra) 라는 이름으로 표현하였다.11 그의 후손인 에벨(Eber)은 아르박삿의 이름을 에벨-벨렉-르우-나홀-데라-아브람의 경로를 통하여 히브리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창세기 11:16~26). 에벨의 다른 아들인 욕단(Joktan)은 13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창세기 10:26~30), 그들은 모두 아라비아(Arabia)에 정착하였다.12


4) 룻 (Lud)

룻(Lud)은 리디아(Lydians) 사람들의 조상이었다. 리디아는 현재 터어키 서부(Western Turkey)로 알려진 곳이다. 그들의 수도는 사데(Sardis) 였는데,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 하나가 사데에 위치해 있었다 (계시록 3:1).


5) 아람 (Aram)

아람(Aram)은 시리아(Syria)의 히브리 단어이다. 구약에서 시리아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것은 ‘아람’ 이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다. 시리아인들은 그들 자신을 아람인(Arameans) 이라고 부르며, 그들이 쓰는 언어도 아람어(Aramaic) 라고 칭하여진다. 그리스 제국이 확장되기 전까지, 아람어는 국제어로써 사용되었었다(열왕기하 18:26).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oi, Eloi, lama sabachthani) (막15:34)’ 라고 부르짖으셨는데,13 그것은 아람어로서 그 시대에 일반인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언어였다.


 

결론


우리는 노아의 16명의 손자들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다.14 그들이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이었다는 증거들은 너무도 많다. 그리고 성경에는 그들 조상들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져 있다. 성경은 신화나 전설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며, 고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중국의 ‘알려지지 않은’ 신에 대한 기원 : 고대 상형문자인 한자 속에 나타나있는 성경(The Original 'Unknown' God of China
: An Ancient pictogram script points to the Bible)
 Ethel Nelson
중국 북경에 있는 450년 된 천단(天壇, Temple of Heaven)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왜 황제는 매년 소위 “교사 (郊祀, Border Sacrifice, 교외에서 드리던 제천의식)”라 불리는 그 해의 가장 중요하고 화려한 의식으로, 하얀색의 커다란 대리석 천제단(Altar of Heaven)에서 황소(bull)를 희생 제물로 드렸는가? 이 의식은 마지막 황제가 폐위된 1911년에 끝났다. 그러나 희생 의식은 단지 450년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의식은 400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order Sacrifice가 기록되어 있는 가장 초기의 기록 중 하나는 공자(Confucius)에 의해서 편집된, 순(Shun) 황제(최초로 기록된 왕조가 시작되었을 때, BC 2256-2205년을 지배했던 황제)를 기록하여 놓은 서경(
Shu Jing, Book of History)에서 발견된다. 거기에서 순 황제는 샹다이 (ShangDi, 상제, 上帝)에게 희생제물을 드렸다고 되어있다.1  


샹다이는 누구인가? 이 이름은 문자적으로 “하늘의 지배자 (the Heavenly Ruler)”라는 의미를 가진다. 명나라 시대(AD 1368)의 법령(Statutes)에 기록된 Border Sacrifice에 사용된 낭송문(축문)을 검토해 보면, 샹다이에 대한 고대 중국인들의 숭배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의식에 참예할 때, 황제는 먼저 천단에서 묵도하고, 악단의 풍악에 맞추어 전통복장의 소리하는 자들이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읊었다. 

   

“전능자시여, 신비로운 일들을 하시는 주재자시여, 내가 생각으로 당신을 바라보나이다.... 이 큰 의식을 통해 당신을 경배하며 높여드립니다. 당신의 종인 나는 단지 한 줄기의 갈대요 버드나무입니다. 나의 마음은 한 마리 개미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나는 제국을 다스리라는 당신의 은총의 명령을 받았나이다. 나의 무지함과 몽매함을 잘 알고 있음으로, 내가 당신에게 받은 위대한 은총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까봐 심히 두렵고 떨리나이다. 그러므로 나의 거룩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나 자신을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며 모든 법도와 율례를 준수하려고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멀지만, 나는 천상에 계시는 당신을 바라보나이다. 당신의 천상의 병거를 타고 이 제단으로 오시옵소서. 당신의 종인 내가 나의 머리를 땅에 대고 공손하게 당신께 절하나이다. 영광스런 은총을 풍성하게 내려주시옵소서...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저희들처럼 축복내려 주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당신의 선하심은 끝이 없으시나이다.” 2  


여기서 황제는 샹다이를 경배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고대의 이 장엄한 의식의 원래의 의도를 추적할 수 있을까? 황제는 샹다이에게 드리는 이러한 연례 의식에 매년 참가하여 축문을 낭독케 함으로서, 샹다이가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옛적 태초에 커다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었다. 다섯 개의 원소들(행성들)은 회전을 시작하지 않았으며, 태양도 달도 빛나지 않았다. 영이시며 전능자이신 당신께서 처음에 순전한 것들에서 거친 부분들을 나누셨다. 전능자께서 하늘을 만드셨다. 땅을 만드셨다. 사람을 만드셨다. 번식하는 힘을 가진 모든 것들을 각기 모양대로 만드셨다.” 3


크리스챤에게 위의 낭송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매우 친숙하게 들린다. 그것은 성경의 창세기의 첫 장을 읽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히브리어로 쓰여진 더 상세한 이야기로부터 발췌된 것과 같은 유사함에 주목하기 바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1-2, 9-10, 16, 27-28)

 

중국의 창조주이신 샹다이는 확실히 히브리인들의 창조주 하나님과 같거나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히브리말로 전능자 하나님의 이름은 엘 샤다이(El Shaddai) 이다. 이것은 발음상으로 샹다이와 유사하다. 심지어 더욱 유사한 것은, 샹다이의 초기 발음인데, 그것은 ‘쟌 다이 (djanh-tigh) [Zhan-dai]’ 이다.4 고대 중국인들이 샹다이와 같이 사용하던 그들의 신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은 ‘천 (天, Tian, Heaven)’이었다. 초기 한나라의 학자였던 쟁 후안(Zheng Xuan)은 “샹다이는 ‘천’의 또 다른 이름이다” 라고 하였다.5 위대한 철학자 묵자(Motze, 408-382 BC) 또한 천(Heaven, Tian)을 창조주(Creator-God)로 생각했다. 

  

“나는 천(Heaven)이 조건없이 인간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안다. 천은 태양과 달과 별들의 질서를 정하시고, 빛나게 하시며 그것들을 붙들고 계신다. 천은 그들을 조절하심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정해 놓으셨다. 천은 눈, 서리, 비, 이슬을 내리셔서 오곡과 아마(flax)와 비단을 자라게 하셔서 인간들이 그것들을 사용하고 즐기게 하셨다. 천은 산, 강, 골짜기, 계곡을 정하셨고, 선악을 다스리도록 많은 것들을 인간에게 위임하셨다.” 6

 

샹다이가 모든 만물들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여기에 고대의 Border Sacrifice 의식에서 낭송되던 축문에 이러한 부분도 있다.

“전능자이신 태(Te, ShangDi) 시여, 당신이 명하실 때에, 하늘과 땅과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나이다. 하늘과 땅 사이를 분리하시고, 인간과 만물을 질서 있게 하시고, 만상을 하늘에 펴셨나이다.”


샹다이가 명하실 때에 하늘과 땅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에 주목하라. 히브리어 책에 기록된 엘 샤다이의 창조하신 방법과 비교하여 보라. 우리는 샹다이와 샤다이는 이름도 유사하고 하신 일들도 매우 유사함으로 사실상 동일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편 33:6,9)

     

우리는 황제가 샹다이에게 황소를 희생 제물로 드린 이유를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이 중국에서 행해진 희생 제사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께 드려지던 희생 제사를 비교하여 보자. 

 

“...흠 없는 송아지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여 여호와 앞에 드리고” (레위기 9:2)

- 최초로 행해졌던 사례들은 창세기 4:3,4절, 8:20절에 기록되어 있다.

Border Sacrifice의 기원은 ‘God's Promise to the Chinese’ 라는 책에서 설명되어져 있다.8 저자인 Nelson, Broadberry과 Chock은 가장 오래된 중국의 상형문자들을 분석하여 왔는데, 그들은 이 문자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형 문자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모세의 시대 이전으로, 이 문자들에는 창조, 유혹,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 동물 희생을 통한 죄의 용서 (이것은 오실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함) 등이 나타나 있었다. 놀랍게도 창세기 사건들의 모든 내용들이 중국의 독특한 문자 속에서 발견되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밑의 그림은 중국의 문자인 한자 속에 나타나 있는 놀라운 사실들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 관련이 있음과 창세기의 사건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족들은 대홍수 이후 첫 문명이었던 바벨 문명에서 살았던 거주민들의 후손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최초로 오실 ‘여자의 후손’인 구세주에 대한 당신의 약속을 창세기 말씀 속에 주셨다 (창 3:15). 창조주 하나님의 어린 양인 구세주의 오심과 희생에 대한 예언은 인류의 나이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중국인들이 기독교를 서양인들의 종교라고 당신에게 말한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고대의 중국인들도 오늘날 크리스찬들이 믿는 하나님을 같이 믿었고 경배했었음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그랬던 것처럼, 중국인들의 조상들도 거짓 신들을 따라 잘못된 길을 걸어갔으며, 그들이 원래부터 섬기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져 갔던 것이다.9 고대의 중국 글자들은 성경의 창세기가 역사적인 진실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